AI 시대, 더 놀고, 더 사랑하고, 더 배우라

A.I.C.E. 세미나 : AI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 반가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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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 인공지능과 인간의 상식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미래의 우리는 어떤 역량을 기르고 활용해야 하는가?

그런데 인공지능이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해 모든 영역에서 인간지능을 뛰어넘어 버리면 이런 질문 자체도 의미가 없다. 특히 일과 직업의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다면 인간이 역량을 기른다고 해도 인간노동이 아닌 기계 노동이 선택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 필요역량 논의는 특이점이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ChatGPT가 엄청난 기량을 보이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일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공지능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공포감까지도 ‘지수적’ 상승의 초입에 있는 듯하다. 인공지능의 지수적 발전은 기술적 현상이고, 인간의 공포감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양의 되먹임 효과는 심리적 현상인데, 이 두 지수적 패턴이 만나면서 특이점 담론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우리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미래 필요역량 논의의 전제로 늦춰지는 특이점을 들었는데, 그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인간의 상식이다. 이것은 인간다움의 상징이고, 특이점을 늦출 뿐만 아니라 이후 이야기할 미래 필요역량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AI 시대, 미래 필요역량은 인간이기에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능력의 복원이라고 믿는다.

상식은 인간들이 ‘집단적’,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지식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별도의 추론 과정 없이 그 지식은 받아들여지고 행해진다. 이 상식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의사결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혹은 다행스럽게도) 인공지능은 인간 상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공지능의 모델이나 컴퓨팅 파워의 문제라기보다 학습 데이터가 상식을 이해하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터넷 공간에서 그냥 바나나가 1000번, 노란 바나나가 1번, 초록 바나나가 10번 언급되었다면, 이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평균적인 바나나 색깔이 노랑이라고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냥 바나나라고 된 학습자료가 사실상 ‘노란’ 바나나라는 상식적 사실을 인공지능은 모르기 때문이다. 바나나가 노랗다는 사실은 ‘암묵적’ 지식이고 이는 인간들끼리는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이런 문제는 인공지능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고, 인간의 적절한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식의 문제는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일정 정도 감속시키는 브레이크로 작동할 것이다. 인간지능을 대체할 특이점의 인공지능이 되려면 모든 영역에서 이 상식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드러나는 학습자료로는 이런 정보를 모두 반영하기 어렵다. 상식은 문서로 된 명시지가 아니라 공유되는 암묵지이다. 따라서 상식의 영역을 인공지능이 잘 처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식은 단순히 지능(intelligence)이 아닌 의식(consciousness)과도 관련이 있다. 의식은 여전히 정의하기 어렵고 통일된 정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장 쉬운 접근으로 ‘고통을 느낀다(suffering)’면 의식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지능을 통한 문제해결만으로 의사결정 하지 않는다. 고통을 줄이는, 혹은 좋은 감정을 늘리는 의식이 개입한다. 인간 진화의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발달하며 인간 의식이 형성되는데, 인공지능에는 아직 의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인공지능 입장에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의사결정이지만, 인간이기에 차마 그러지 못하는 그런 판단일 때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손짓 하나로 전 인류의 절반을 죽이는 타노스 인공지능에 맞서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의식은 타노스의 결정을 저지하는 상식적 판단을 한다.

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된 인간 특유의 감정, 의식, 그리고 그것이 결정화 되어 있는 상식 혹은 문화는 인공지능이 특이점 너머로 질주해 가는데 적절한 브레이크로 작동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인간의 개입이 필요한 영역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전체 프로세스의 발전 속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10킬로미터 거리를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10킬로미터 모두 잘 포장되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 1킬로미터가 비포장 진흙 길이라면 결국 최종 도착 시간은 이 1킬로미터가 결정한다. 앞 9킬로미터에서 아무리 빠르게 주행하더라도 마지막 1킬로미터에서 거북이걸음이 된다면 과연 이 자동차는 인간 마라토너를 이길 수 있을까?

썩 중요하지 않은 의사결정이거나, 이후 인간의 감수가 작업 프로세스에 있는 경우라면 현재의 인공지능 수준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인간의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대체해도 될, 즉 마지막 1킬로미터까지 포장된 특이점의 인공지능은 당분간 쉽지 않다. 암묵적인 지식과 상식들은 비포장 진흙 길이다. 이 길은 자동차보다 인간이 빠르다. 전국의 길을 모두 포장도로로 바꾸려면 꽤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할 것이다.

2. 인공지능과 미래의 필요역량

상식이 특이점을 늦춰준다면 — 물론 그 발전 속도는 여전히 빠르고 인간의 적응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 남아 있는 우리의 과제는 인간에게 필요한 역량을 잘 개발해서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것이다.

새로운 자동화 기술로서 인공지능은 과거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자동화는 수동기계에 제어장치를 결합한 것인데, 새로운 제어장치가 등장할 때마다 인간노동과 기계의 관계는 재설정 된다. 그에 따라 필요역량도 바뀌었다. 수공업에서 공장제 생산으로 변화하고, 극소 전자기술이 제어장치에 활용되다가, 이제 정보통신 기술을 넘어 인공지능이 이 제어장치에 장착되고 있다. 인공지능 이전, 현재까지만 보면 제어장치가 바뀜에 따라 장인적 숙련이 반숙련으로 대체되고, 기업 특수적 숙련이 중요해졌다. 이에 포괄적인 직업능력이 아닌 특정 과업에서 고도의 숙달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이 특정 과업 영역만을 집중하여 기르는 교육훈련 체계가 현재 자리 잡고 있다. 특정 과업만을 집중적으로 잘하는 방식의 전문성은 생산과정에서 노동의 소외와 탈인간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제어장치가 장착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고온과 고압의 공장환경, 테일러주의 작업장을 특성으로 하는 노동과정이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으로 더 인간적인 작업장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필요역량도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핵심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상호보완성이고 이 상호보완성을 극대화하는 역량이 필요역량이다. 인공지능은 어렵지만 인간에게는 쉬운 역량이 그것이다. 결국 가장 인간다운 것 중 필요역량이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심리학자 카네만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시스템 1과 시스템2로 구분되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시스템 1은 빠르고 직관적인 판단, 시스템 2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판단이다. 고통, 두려움, 쾌락 등의 감정은 당연히 시스템 1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고통은 회피의 판단을 순식간에 하게 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혹은 1+1은 즉각적으로 2라고 답한다. 반면 복잡한 방정식을 풀 때 우리 뇌는 시스템 2가 작동한다. 이 과정은 느리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인지적 구두쇠인 뇌는 어림짐작하는 휴리스틱을 작동시키며, 온갖 편향과 잡음으로 가득 찬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이는 진화적 선택의 결과이며 전문가라고 해서 피해 갈 수는 없다. 인간의 뇌는 웬만해서는 시스템 2에게 판단을 맞기지 않고 시스템 1로 처리하는 지름길을 택한다. 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본능인 코끼리에 올라탄 이성의 기수가 아무리 노력해도 코끼리의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는 묘사를 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시스템 2에서 시작해서 시스템 1로 끝난다. 학습의 과정에는 시스템 2가 작동하지만, 그 결과 성공적으로 스킬 또는 역량이 축적되면 그것은 시스템 1에 장착된다. 예컨대, 운전을 처음 배울 때 온갖 정신을 여기에 쏟게 되고 판단도 느리다. 하지만 여러 번의 반복으로 숙련이 축적되면 이제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운전하게 되고 판단은 빠르다. 시스템 2에서 담당하던 운전을 이제 시스템 1에서 담당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기능은 여전히 시스템 2에서 담당하며, 시스템 2와 시스템 1이 협업하여 최적의 운전역량이 구축된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가 배움이고 숙련이다.

학습을 통해 숙련이 축적될수록 뇌 안의 시냅스 연결이 늘어나고, 그 연결은 정보전달의 고속도로를 만든다. 전문가가 되려면 일만 시간 정도 노력하라고 하는데, 시스템 2에서 시스템 1로 가는 과정은 더디지만 일단 성공하면 그다음부터는 빠르다. 인간 역량과 의사결정은 여전히 시스템 2에서 처리해야 하는 것이 있고, 학습과정을 거쳐 시스템 1로 이전하여 처리하는 것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ChatGPT가 하는 일이 인간 뇌의 시스템 1과 닮았다는 점이다. ChatGPT는 적절한 질문을 하면 순식간에 어떤 답을 내준다. 인간 전문가가 만 시간에 걸려서 숙달되어 하는 그 일을 ChatGPT는 불과 몇 초 만에 끝내 버린다. 이러저러한 조건으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 숙달된 화가보다 더 빠르게 그림을 그려준다. 마치 ‘인공 시스템 1’이 작동하는 듯하다. ChatGPT는 어떤 경우에는 인간이 시스템 1로 전환하기 어려운, 그래서 여전히 힘들고 느리게 시스템 2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도 순식간에 처리한다. 즉, 인공지능은 기존에 인간이 하던 시스템 1의 과업(상당 부분)과 시스템 2의 과업(일정 부분)도 모두 인공 시스템 1로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새로운 선택에 직면한다. 오랜 학습 시간을 들여 숙련을 축적하여 어떤 기능을 시스템 2에서 시스템 1로 옮길 것인가? 아니면 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인공 시스템 1을 활용할 것인가? 인간은 인간 뇌의 시스템 1과 시스템 2, 그리고 인공지능의 인공 시스템 1을 모두 가지고 역량의 개발과 활용,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습과 의사결정의 프로세스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다른 한편, 인간 본성의 코끼리와 인간 이성의 기수에게 인공지능은 적절한 채찍이 되어 우리 인간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방식의 자동화에서는 인간의 직업을 여러 과업(task)으로 쪼개고, 그 과업을 잘 할 수 있는 특수적 숙련(specific skill)을 기르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이 시스템 1의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한다면 특수적 스킬의 필요는 크게 줄어든다. 특수적 스킬을 담당하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수 있고, 하나의 직업 안에서도 특수적 스킬의 비중이 줄어드는 과업의 재조정(reorganization)이 벌어질 수 있다.

이제 인간은 특수적 스킬을 개발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대신, 인공지능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에게는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중요한 인간 역량이 된다. 인공 시스템 1의 기능을 잘 활용하는 시스템 2의 역량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해당 분야에서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인공지능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편향이 있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좋은 질문이 가능하다. 이런 능력은 해당 분야에서의 고도의 전문성, 과업을 둘러싼 맥락적 지식, 인지능력, 창의성, 비판적 사고 능력 등 과거와 달리 깊고도 포괄적인 능력이 중요하다.

분절화되고 쪼개진 과업에 대한 전문성이 아니라, 해당 직업 전체를 관통하는 지식, 인접 직업에 대한 지식까지도 폭넓고 깊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생산성은 역설적으로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그 직업능력을 더 고도로 가지고 있을 때 나온다. 고급 전문가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더 큰 생산성 향상의 기회를 얻지만, 중급 또는 하급 전문가, 특히 특정 과업에만 집중하는 전문가는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내 직업역량을 더 고도화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며, 나를 반성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해서 나의 판단과 역량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바로 AI 시대, 미래 필요역량이다. 비판적 사고와 반성은 효율적인 학습전략을 수립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생물학적 한계 속에서 편향과 잡음으로 가득 찬 오류 투성이의 인간 의사결정을 회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한 인간 역량이 바로 메타인지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가진 바로 그 역량이다.

메타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메타인지와 관련된 뇌의 영역은 ‘디폴트모드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인데, 이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다. 인간은 여유를 가지고 있을 때, 반성적 사고를 하고 더 나은 미래 전략을 세운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확히 판단하며 전략적 학습도 가능하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사실 남에게 설명할 때 더욱 확실해진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타인에게 설명하면서 확실해지는 것이다.

즉, 메타인지는 여유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타인과 공감하고 마음 읽기와 관련된 뇌의 영역, 즉 ‘심리화 체계’는 디폴트모드네트워크와 인접하고 일부 겹친다. 사실 인간의 반성적 사고의 대부분은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할 대상은 같은 부족에 있던 누군가와의 관계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며, 그런 나를 타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고민하면서 인간의 인지능력은 만들어지고 고도화되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선한 삶 그 자체보다 평판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라우콘의 역량이 그것이다.

메타인지와 인간의 사회성, 즉 사회적 역량(social skill)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서로 상승의 나선형을 그리며 발전해 왔다. 이 두 역량은 뇌의 디폴트모드네트워크와 심리화 체계가 담당하며 서로 인접하여 인간 뇌에 장착되었다. AI 시대, 필요한 역량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메타인지와 사회적 역량이다. 인간이 새로운 것을 알고 싶고,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은 본능이다. 반복하여 좁게만 알고, 자폐증에 빠지는 것은 오히려 병적이며 인간답지 않은 것이고 잘못된 시스템이 우리에게 강제한 것이다.

두 역량은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미 우리의 뇌 속에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 역량이다. 고온 고압의 공장, 테일러주의적 작업장, 통제와 위계의 노동과정이 오히려 이러한 자연스러운 인간 역량을 제한해 왔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핀 공장에서의 분업이 생산성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이야기했지만, 동시에 좁은 영역의 전문화가 공동체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인간의 인지능력을 얼마나 퇴화시키는지도 우려했다. 기업에게 평생교육기금을 갹출하여 노동자의 인지능력 퇴화를 막아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을 하기도 했다. 기업 특수적이고 취업능력과 관련한 평생학습이 아닌 노동자의 시민적 덕성과 포괄적 판단능력 함양을 위한 평생학습을 주장한 것이다. 이제 AI 시대, 새로운 교육훈련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주류 경제학의 성인인 아담스미스의 이야기에 귀 귀울여야 할 때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역량은 집단적이고 사회적이다. 개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공동체, 혹은 사회 전체의 ‘사회적 역량(societal skill)’을 강화해야 한다. 뇌 안의 시냅스만 연결할 것이 아니라 뇌 간의 시냅스도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협력을 위해 경쟁심이 아닌 친밀감이 관계를 지배해야 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 팬들의 뇌는 가수의 뇌와 동기화되어 마치 하나의 뇌처럼 작동한다.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 속도를 개개인의 역량으로만 대응하려 해서는 안 된다. 특이점이 오지는 않더라도 다른 어떤 자동화 기술보다 인간에게 근접한 새로운 이 기술에 인간 전체의 사회적 역량으로 대응해야 우리 인간의 우위를 유지하고 의사결정을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다. 위계적 조직의 소수가 아닌 수평적 조직의 민주적 결정이 사회적 역량을 통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3. 더 놀고, 더 사랑하고, 더 배우라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우리의 뇌는 시스템 1과 시스템 2에서 인공 시스템 1로 확장되었다. AI 시대에는 더 이상 좁은 역량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해야 한다. 뇌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옛것을 걷어내고 새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하면 된다. 우리가 원하고 만들어 가야 할 AI 시대는 소수에게만 ‘생각을 허락(permission to think)’하는 ‘디지털 테일러리즘’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구상과 실행이 통합된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전환’이다. ChatGPT에게 인공지능 시대 공산당 선언을 다시 써달라고 부탁해 보자.

“잃을 것은 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아니고,,,, “잃을 것은 특이점이요, 얻을 것은 혁신이고 행복이다. 인간이여 더 놀고, 더 사랑하고, 더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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